1978년 부산에서 일어난 실제 이야기
영화의 포스터가 제법 코믹하게 나왔던지라, 시대물을 담은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약 45년 전에 부산에서 실제 벌어졌던 한 아이의 유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실화임을 바탕으로 할 때 다시 경찰 사회에서는 결코 용납되지 않았을 '무속인'과의 합동 수사라는 점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이었다.
1978년 부산에서 부유한 가정의 외동딸로 자라나는 은주가 영문도 모르게 납치를 당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그때 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했듯 경찰에 신고를 하고 무속인들을 찾아 점을 치고 기도를 하며 아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아이를 찾을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아이를 유괴하는 일이 꽤나 흔한 일이었다. 아이를 버리는 부모도 많지만 돈을 목적으로, 혹은 아이가 예뻐서 라는 이유로도 종종 아이가 납치되는 일이 잦았던 시대였다. 그래서 내가 자라나던 1980년대에도 부모님이 우리에게 늘 당부하기를 "누가 맛있는 것을 사준다고 같이 가자해도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라는 이야기가 매일 일상처럼 반복되는 레퍼토리였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그 시절에는 유괴에 대응하는 전문적인 지식이나 전담 팀들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다시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지곤 했었는데, 이 영화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음으로써 모든 관객들이 숨 죽이고 영화에 집중하게 만든다. 부디 납치된 은주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한 마음으로 영화를 시청하게 만드는 몰입력이 충분하다.
무속인과 형사의 하모니
다시 말하지만 한국에서 형사라는 직업은 자긍심이 강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속의 힘은 결코 믿거나 의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극비수사에서 주인공 공길용 형사는 무속인 김중산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새겨들어 결국 아이를 구하는데 중요한 도움을 만들어낸다.
아마 영화 초반에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을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라는 문구가 없었더라면 나는 영화 초반에 형사와 무속인이 팀을 이루어 수사를 진행한다는 그 부분부터 바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외쳤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영화는 실화이고 말이 안 될 것 같지만 아이가 태어난 날짜와 시간, 이름 만으로도 아이가 어떤 위험에 쳐했고 어디에서 구출을 해야 할지 알아내는 김중산의 역할은 정말로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막다른 골목에 마주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형사뿐만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전해 주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아마 이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내 능력이 출중하고, 혹은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라 하더라도 늘 옳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리고 늘 해오던 일이기 때문에 그것을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가 오히려 평범한 사람보다 더 힘들 때가 있기 마련이다. 감독은 그렇기 때문에 자만하지 말고, 언제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결코 어울릴 수 없을 것 같던 두 직업이 서로에게 말을 기울이고 존중하여 내 생각에 반영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은주를 구해낼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비수사 전체 줄거리
1978년, 부산의 아주 부유한 가정의 무남독녀 외동딸이 납치를 당한다. 아이를 유괴한 범인은 한참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다. 돈을 요구하지도, 혹은 다른 무엇인가를 요구하지도 않은 채 시간은 자꾸 흘러만 간다. 지역 유명인의 딸이 사라진 상황이니 만큼 경찰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만 단서를 찾기가 쉽지 않다. 기다림을 견디지 못한 아이의 어머니와 고모는 근처에 유명한 무당들을 찾아다니면서 아이를 찾을 수 있는 방안을 물어보지만 거의 모든 무속인들이 아이를 찾을 수 없다고 대답을 한다. 그러다 딱 한 사람, 김중산만이 아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답변을 했다.
김중산은 또한 아이가 살아서 돌아오기 위해서는 형사 공길용이 수사를 지휘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아이의 사주에 불이 많기 때문에 이를 잘 눌러서 산 채로 데려오기 위해서는 사주에 물이 많은 공 형사가 반드시 필요한 것. 공 형사는 이런 연유로 수사팀의 팀장 역할을 맡게 되고 모든 것을 비밀로 하는 극비수사를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보름이 지나도록 유괴범에게서는 연락이 없고, 아이의 부모는 고통스러운 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중 무속인 김중산이 "아이가 유괴된 지 19일째 되는 날 범인이 연락을 해 올 겁니다."라는 말을 남겼고 이는 놀랍게도 현실로 이루어진다. 그때부터 다시 아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기 시작하지만 일은 진척이 없어 보이고 아이의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빨리 아이를 구출해내고 싶은 마음에 부산이 아닌 서울의 유명한 형사에게 이 사건을 의뢰하게 된다.
그러면서 수사팀의 중심이었던 공 형사와 김중산 역시 서울 팀으로 합류하게 되지만 서울팀과의 수사 방향이 틀려 무시당하거나 배척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을 견디고 버텨 김중산이 중요한 점괘를 보게 되고, 결국 범인을 잡을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다행히 유괴되었던 아이 은주는 무사히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공 형사와 김중산은 친한 친구가 되어 다 함께 나들이를 다니는 것으로 영화 극비수사는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재미있지만 감명 깊었던 실화 영화
줄거리에는 최대한 간략하게 적어두었지만, 실제로 실화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한 마음에 속에서 불이 날 지경이었다. 아이의 생명이 달려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목숨보다는 자신의 승진이 우선인 사람들, 그리고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내가 잘났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는 사이 아이는 점점 더 지쳐가는 장면들을 보면서 끊임없이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이 모든 것이 현실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이었다.
아이의 목숨을 앞에 두고도 서로의 이익을 탐하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환멸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그 모든 상황을 이겨내고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는 어른들도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공 형사와 무속인 김중산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답을 찾아가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고, 실제로 김중산 같은 사람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점을 보러 가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설레기도 했다. 또한 이기적이고 무심한 듯 보이지만 경찰이라는 역할에 있어 가장 순수한 사람인 공 형사의 모습 역시도 감명 깊게 다가왔다.
오랜만에 점을 보러 가고 싶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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