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영화가 되다
2021년 개봉한 호러 영화 방법 재차의는 2020년 tvN에서 방송되었던 드라마 '방법'의 연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스타일의 주제들은 한국에서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하는 비주류 테마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방영 당시에 마니아 부류들에게 꽤나 많은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었다.
주로 귀신이 나오거나 살인을 소재로 하는 일반적인 호러 영화와는 다르게, 일반인들에게 매우 낯선 '방법'이라는 소재가 참신하다. 영화에서 말하는 '방법'이란 상대방을 저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쪽으로 관심이 많은 나에게도 2020년 드라마 당시에 처음 들어본 단어였을 정도로 흔하지 않은 소재이다.
'낯선 소재를 잘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는 다르게, 드라마와 영화 모두 굉장히 깔끔하고 센스 있게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재미있는 점은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영화를 보고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부분이다. 그만큼 이야기는 스릴 있고 흥미롭지만 어렵지 않다. 특히나 주인공이 '어린 소녀'라는 점이 특징적인데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부조리가 고스란히 드러나 직설적이면서도 몰입력을 끌어올린다.
드라마로 나왔던 원작 역시 재미있어서 연달아 두 번을 시청했을 정도였는데, 영화로 개봉한 방법 재차의 역시 재미있어서 두 번을 볼 정도로 잘 만든 한국형 호러무비이다. 앞으로 시즌2, 시즌3을 비롯해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스핀오프 시리즈가 기대된다.
줄거리
드라마에서 '기자' 역할을 했던 임진희는 영화에서는 작은 독립 언론사를 개업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던 중 현대 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바로 사건의 범인이 사람이 아닌 시체인 것. 죽은 지 3개월이나 지난 시체가 사람을 죽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된다. 임진희는 라디오 출연을 하던 도중 시체를 조종해 살인을 시켰다고 말하는 '진범'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다. 진범은 자신이 모든 일의 배후이며 임진희와 직접 단독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다. 주변의 걱정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범인이 요구하는 대로 생방송을 진행하게 되지만 그 역시도 이미 죽은 '시체'였음이 밝혀지게 된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을 하던 시체는 자신의 쓸모가 다 하는 순간 다시 죽음으로 되돌아가는데, 진범은 다시 시체로 돌아가기 전에 한 제약 회사의 회장과 전무, 이사를 죽이겠다는 '3번의 살인'에 대한 예고를 한다. 범인은, 그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을 단 한 가지 제시하게 되는데 바로 승일 제약 변승일 회장이 진심을 담아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하는 일이었는데 당연하게도 회장은 절대 사과를 할 생각이 없다.
임진희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풀어나가기 위해 민속학과 교수를 찾아가게 되고, 그를 통해 그들이 '재차의'라 불리는 주술이 걸린 죽은 시체임을 알게 된다. 일종의 주술에 의해 죽은 시체에 의지가 생긴 채로 살아나게 되고, 자신을 되살린 임무를 완수하는 순간 흙으로 변한다. 재차의는 한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손목 위쪽에 특유의 문양이 새겨져 있어서 그 문양을 잘라내거나 파괴하면 손쉽게 그들을 없앨 수 있다.
이런 주술을 사용하는 사람은 '두꾼'이라는 인도네시아의 주술사로, 한국의 무당과 비슷한 존재다. 그들은 자신의 피를 섞은 흙으로 인형을 만들어 저주를 거는데, 고층 빌딩에서 떨어져도, 총에 맞아도 죽지 않으며 오로지 문양을 파괴해야만 그들을 멈출 수 있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던 임진희는 반년 전, 승일 제약이 비밀리에 진행한 '불법 임상실험'에 대해 알게 된다.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신약을 무리하게 승인받기 위해 불법적인 임상 실험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죽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만한 노숙자나 외국인들을 이용했다. 그리고 결국엔 임상 실험 대상 100명이 모두 사망하고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덮어버린다.
경찰이 살인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예고되었던 대로 한 명씩 죽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임진희의 남편이자 경찰인 정성준이 재차의 손에 상처를 입으면서 독에 감염되는데, 이 독은 임상 실험 당시에 실험했던 약 성분이자 100명을 죽였던 바로 그 약이었다. 사건의 진실을 쫓으면서 임진희는 위험한 상황들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때 방법사 소진이 나타나 그녀를 구해준다.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열연했던 소진은 어느샌가 훌쩍 자라 있고 어릴 때와는 그 모습이나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있다. 그녀는 자신의 몸속에 존재하는 악귀를 소멸시키기 위해 전 세계의 주술과 술법들을 배워왔고, 위기의 순간에서 희망의 불씨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진실을 향해 나아가고, 그 과정에서 끔찍한 현실들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타인의 목숨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던지는 이들과 그로 인해 자식이나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비통한 감정들이 절절하게 표현된다. 결국 시체를 살려내서 이 모든 사건을 만들어 낸 두꾼 역시도, 승일 제약의 불법적인 임상실험에 자신의 딸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슬픈 복수였다.
한국 전통을 그려낸 한국판 호러 영화
서양의 호러무비들과는 다르게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양의 '무서운 이야기'들은 그 내용이 사뭇 다른 편이다. 악귀에 대한 엑소시즘이나 과학을 기반으로 서양의 한 잔인한 살인사건(큐브, 쏘우 등)과는 다르게, 동양에서는 인간이 죽고 난 후의 '사후세계'를 표현한 이야기들이 많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잘 알고 있는 설화나 이야기에 그 바탕을 두고 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방법 재차의'의 경우, 이런 테마를 제법 좋아하는 한국인들도 처음 들어보는 신비로운 저주 술법에 대한 이야기로 영화를 풀어나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부적인 묘사와 디테일이 날카롭게 살아있다. 비주류의 주류화에 성공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최근 들어 넷플릭스에서 '한국형 좀비'를 테마로 한 드라마와 영화가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 영화는 그것과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좀비는 아니지만, 충분히 무섭고 신선하며 시즌2, 시즌3이 기대되는 잘 만든 한국판 호러무비인 셈이다.
영화의 마무리에서도 이야기는 앞으로 계속 이어질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데, 2개의 쿠키영상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여전히 끝난 것은 없으며 우리의 저주는 계속될 거라는 암시가 담겨있다. 끝인 듯 끝이 아니라서 더 무섭고,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영화이다.
성장하는 주인공
드라마에서의 주인공은 '소진'이라는 어린 소녀였다. 무당이었던 어머니가 굿을 잘못하는 바람에 어린 소진의 몸에는 악귀의 일부가 자리 잡게 되었고 소진은 자신을 희생하여 주변의 사람들을 살리는 결정을 내린다. 이 모든 것이 어린 소진이 그려낸 이야기였다.
하지만 영화에서 소진은 훌쩍 성장해있다. 가엽고 슬픈 어린아이가 아니라, 다른 주인공들을 지켜주고 적에게 맞설 '최종 무기'가 되어있다. 몸속의 악귀를 없애기 위해 많은 시간 동안 노력한 결과 그녀는 이전보다 성장했고 강해졌다. 때문에 영화에서는 그녀의 강력한 힘으로 시원하게 적들을 날려버리는 장면들을 응원할 수 있었다.
주인공이 역경과 고난을 딛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연작 시리즈의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다음 호러 영화에서의 소진의 모습이 얼마나 더 멋있게 성장해 있을지 충분히 기대된다.
방법 재차의, 관람 후기
잔인하거나 무서운 장면들 때문에 무서운 영화는 아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줌으로써 '사람이 제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심리적 공포 때문에 무서운 영화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다양한 샤머니즘적인 전통들과 그럴싸하게 잘 만들어진 CG들을 보는 재미 만으로도 관람하는 내내 긴장감이 끊이질 않았다. 또한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력 때문에 더욱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드라마에 이은 시즌오프 형식의 영화라, 줄거리가 너무 드라마에 끌려가지 않을까 생각했던 걱정과는 다르게, 영화는 충분히 독립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다만, 드라마에 비해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짧다 보니, 못다 한 이야기들이 많은 점은 상당히 아쉬웠다. 앞으로의 시리즈를 더욱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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