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무엇인가.
이 영화는 상당히 즐거운 분위기에서 시작된다. 행복해 보이는 단란한 가족이 이사를 오면서 발생하는 기이한 사건을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처럼 보여서 관객들은 영화 초반에 전혀 다른 포커스에 집중하게 된다. 흔한 공포영화처럼 '열면 안 돼'라고 지정되어 있는 단 하나의 공간에서 무엇인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긴장감과 공포감으로 영화는 전개되지만 실질적으로 결말에는 완벽한 반전이 숨어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두려움이나 공포를 심어주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바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은 독특하게 풀어나간 영화라 말할 수 있다. 가족이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안전한 울타리이자 아늑해야 하는 공간이지만 만약에 그것이 내가 믿었던 진실과 다르다면?이라는 의문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즉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이 주는 공포란 보다 치명적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가족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연극이었음이 밝혀지는 순간, 영화는 무섭다기보다는 슬프고 아프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에게나 예상치 못했던 순간들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우리는 수많은 갈림길 속에 놓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내렸던 결정이 평생을 후회하게 만들 만큼 잘못된 일이라 할 지라도 한 번 선택한 길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가족을 희생시켜야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 어느 누구도 섣불리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 역시 그렇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느꼈었고, 최선이라 생각하여 결정했던 선택이 결국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를 파멸로 이끌어버리는 결과를 만들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가족을 포기할 수 없을 거라는 절망이 보는 관객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어떤 가족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영화는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고 있다. 과연 당신은 그런 미래를 충분히 대비하고 있느냐고.
기억의 밤 줄거리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기억의 밤은 단란한 네 식구가 차를 타고 이사를 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주인공인 막내아들 진석은 21살로 매번 수능 시험에 떨어져 3수를 준비하고 있고, 그에 비해 엘리트인 형은 사고로 인해 다리를 조금 절지만 여전히 못하는 것이 없는 히어로 같은 존재이다.
이사할 2층 집에 도착한 진석은 마치 언젠가 이 집을 본 듯한 데자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짐 정리를 시작하는데 2층의 구석방 하나는 전 주인이 짐을 아직 치우지 못했다며 한 달 정도만 짐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사용할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전 집주인은 절대 그 방문을 열어보지 말아 달라 당부를 했다고 하는데 그날부터 진석은 그 방에 무언가 있다는 확신을 받게 된다. 자꾸 방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었던 것.
사실 진석은 신경불안증세가 있어서 약을 복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라는 형의 말에 수긍하고 형과 함께 산책을 나가게 된다.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우산을 쓰고 동네를 둘러보던 중에 형의 전화벨이 울린다. 아버지가 뭘 좀 찾아달라 한다고 금방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집으로 향하는 형, 하지만 형은 곧 이상한 사람들에게 납치당해 어디론가 끌려가게 되고 이 뒷모습을 보게 된 진석은 집으로 뛰어가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기절해버린다.
수사는 진행되고, 엄마는 불안해하는 진석에게 약을 챙겨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 약은 바르비탈로 안정제가 아닌 수면유도제 혹은 최면 유도제로 쓰이는 약이었다. 이를 전혀 알아채지 못한 진석은 약을 꾸준히 섭취하고 있다. 아무리 찾아도 흔적을 찾을 길 없었던 형은, 신기하게도 19일 만에 무사히 집에 돌아오게 되지만 그동안의 일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형이 돌아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했던 진석이지만, 돌아온 형은 어딘지 모르게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진다.
형은 진석이 잠든 밤마다 어디론가 사라지기도 하고, 또 원래 왼쪽 다리를 절어야 하는 사람이 순간적으로 오른쪽 다리를 전다거나 하는 기묘한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 이때부터 진석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어느 날 밤 새벽, 집을 나서는 형을 미행해 뒤쫓게 된다. 다리를 절던 형은 집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자 완벽하게 멀쩡한 걸음으로 택시를 잡아탄다. 이를 보고 놀란 진석은 뒤 이어 오는 택시를 잡아타고 그를 따라가게 되고, 으슥한 골목에서 '사장님'이라 불리는 형의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결국 납치되었다 돌아온 형은 형이 아니라는 생각에 휩싸이게 되고, 그를 쫓아오는 의문의 남자들을 따돌리던 와중에 기절하게 되었으나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자신의 침대 안이었다.
낯선 형에게서 공포를 느낀 진석은 엄마에게만 이 사실을 몰래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날 밤 엄마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진석이 눈치를 챈 것 같다며 소름 끼치는 말을 한다. 진석은 모든 것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도망쳐 경찰서로 향하지만 그곳에서 경찰은 '41살 맞으시죠?'라고 이야기를 한다. 자신은 21살이라며 우기지만 현재는 그가 기억하는 1997년이 아닌 2017년. 즉 그의 머릿속에서는 마법처럼 20년의 기억이 사라진 셈이다.
결말
실제로 일이 발생하는 년도는 2017년이 맞다. 그렇다면 자신이 1997년에 살고 있는 21살의 진석이라고 믿었던 그의 기억력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한 복선은 영화 중간중간에 깔려 있다. 특히 엄마가 건네던 약인 바르비탈, 즉 최면 유도제는 그가 그동안 최면에 걸려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1997년 진석은 실제로 가족들과 함께 이사할 집을 향해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부모님은 자리에서 즉사, 그리고 형은 깨어나지 못한 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돈은 형의 치료비로 다 사용하고 병원에서는 치료비가 밀리자 그만 나가 달라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일자리를 구해봐도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던 진석은 결국 해서는 안될 선택을 하게 된다.
원하는 대로 돈을 줄 테니 사람 하나만 죽여 달라는 제안. 밤을 꼬박 새워서 고민한 그는 결국 형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상대방은 집 주소 하나를 알려주면서 이 집에서 자고 있는 엄마만 죽여달라고 의뢰한다. 절대 아이들이 다쳐서는 안 된다는 이상한 요구도 함께였는데 그날 밤 그 집에 간 진석은 차마 사람을 죽일 수 없어 그냥 돌아 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이 장면을 엄마가 보게 되고, 미안하다 말하며 그냥 나가려는데 2층에서 자던 큰 딸이 깨어나 이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진석은 엄마와 딸을 모두 죽여버리게 된다. 그리고 방에서 자던 막내아들이 깨서 나오자 '1부터 100까지 열 번 세고 나와' 라면서 아들을 안전하게 방 안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돌아 나오면서 발견한 그 집의 가족사진에는 자신의 형을 담당하는 의사의 얼굴이 걸려있었다. 즉 이 모든 일의 배후는 형의 주치의였던 것.
진석은 다음 날 주치의를 찾아가 어떻게 가족을 죽여달라 의뢰할 수 있냐며 따지지만, 의사는 '아이 엄마만 죽으면 그 보험금으로 자식들과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있어!'라고 말하며 절규한다. 즉 병원 운영이 어려워지자 아이 엄마 앞으로 거액의 보험금을 들어놓았고 그녀를 살해함으로써 그 돈을 받아 아이들과 함께 잘 살 계획이었던 셈. 하지만 실수로 그의 딸도 죽어버리게 되었고, 진석을 죽이려던 주치의와 몸싸움을 벌이던 중 주치의 역시 떨어져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진석 역시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이 모든 기억이 돌아온 진석 앞에는 그 어린 날 자신이 살려주었던 어린 꼬마가 있었다. 바로 형의 모습을 하고 연기를 했던 그 사람이 20년 전, 자신이 '1부터 100까지 10번 세고 나와'라고 말하며 살려주었던 그 집의 막내아들로 이름은 유석. 유석은 모든 진실을 알려달라 말하지만 사실 그 역시도 모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돈을 위해 엄마와 누나를 죽이라 청부한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 너무 미안했던 진석은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한다. 결국 두 사람은 각자의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한번 더 보고 싶어지는 영화
장항준 감독의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답게, 이야기는 너무 많은 숨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관객들을 낚시하듯이 기억의 밤은 초반에 '열면 안 되는 문'을 등장시킴으로써 관객들의 포커스를 전혀 엉뚱한 곳에 집중시킨다. 덕분에 그 문을 열고 무엇인가 나올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정작 중요한 복선들을 놓쳐버렸다.
물론 그 안에는 최면에 걸린 진석에 대한 조치를 하기 위해 두어 명의 사람들이 숨어 있긴 했지만 영화의 내용에서 결코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진석과 유석의 행동에서 묘한 어긋남들이 발생하는 순간들이 훨씬 더 중요한 복선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결말을 보자마자 처음으로 돌려 다시 영화를 보고 싶어 진다.
말 그대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다소 빠르게 내용이 진행되는 바람에 관객들을 쉴 새 없이 집중하게 만든 영화 기억의 밤. 특히나 진석과 유석 두 주인공의 폭발적인 연기력 덕분에 그 모든 감정들이 배가 되어 관객들에게 전해졌다는 점에서도 훌륭한 평가를 주고 싶다. 다만 그 모든 것들이 형을 살리기 위한 진석의 슬픈 결정이었고 그로 인해 단란하고 행복했던 또 다른 어린 유석은 졸지에 가족을 잃고 이 세상에 홀로 남아 버린다. 너무 어렸던 유석은 주변 친척들에게 모든 보험금을 빼앗기고 고아원을 전전하게 되고, 자신의 행복한 삶을 산산조각 내 버린 원수를 찾기 위해 노력을 하면 할수록 모든 것은 자신의 아버지가 사주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면서 스스로 무너져 내리게 된다.
무섭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결국엔 눈물을 펑펑 쏟아냈던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기억의 밤은 넷플릭스에서도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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