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위도우, 마블의 여성 히어로 무비

여자들의 시원한 액션 무비

마블 스튜디오가 보여주는 대부분의 히어로 시리즈는 화려한 액션씬이나 마법 신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렸던 어벤저스 시리즈가 그랬다. 어벤저스의 일원인 블랙 위도우 역시 인간을 넘어서는 역량을 보여주는 여성 히어로임에 분명하지만, 다른 어벤저스의 멤버들보다는 약해 보인다. 그래서 어벤저스 영화 속 하나의 등장인물로 나왔을 때의 블랙 히어로는 분명 약해 보인다. 존재감이 없었다랄까. 

 

하지만 스핀오프 격으로 제작된 블랙 위도우 영화에서는 기대 이상의 액션씬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화려하고 스릴 있다. 역시나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생각이 관객들의 머리를 지배할 만큼 그녀의 액션씬은 놀라울 정도이다. 거기에 더해 친동생은 아니지만 동생 역할로 나온 플로렌스 퓨의 연기도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다. 스칼렛 요한슨이 기술과 속도의 액션을 중심으로 했다면, 플로렌스 퓨는 기존의 여성들보다 강한 파워와 강력함으로 무장한 신을 선보인다. 

 

처음부터 가족이 아니었으나 가족이라 믿고 자랐던 두 자매에게 현실은 지독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자매가 만들어가는 하모니는 상상 이상이었다. 중간중간 설정된 불협화음이 오히려 영화 전체를 조화롭게 만들어준다. 

 

여성 히어로 무비라서  화려함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 생각을 바꾸길 추천한다. 블랙 위도우는 다른 마블 영화들보다 더 화려하고 흥미진진하며 긴장을 놓을 틈 없이 만든다. 중간중간에 개그적인 요소를 넣어 쉬어가는 타이밍도 잊지 않는다.  '더 보고 싶어!'를 외치게 만드는 여자들의 시원한 액션을 기대해도 좋다.

 

 

더 이상의 스칼렛 요한슨은 없다.

영화가 충분히 재미있어서 더욱 아쉬웠던 점이 있다. 바로 이 작품이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하는 블랙 위도우의 마지막 단편 영화가 될 것이라는 점. 중심 스토리인 어벤저스의 다음 편에서 블랙 위도우는 스토리 설정상 죽게 된다. 때문에 더 이상의 스칼렛 요한슨은 없는 셈. 이미 해당 내용이 공개되고 난 후라, 영화를 보는 내내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  더 이상의 스칼렛 요한슨을 볼 수 없다니, 아쉽지만 다행인 점은 여동생인 플로렌스 퓨가 제2의 블랙 위도우가 되어 시리즈를 이어가게 된다는 점이다. 

 

영화가 끝나고 쿠키 영상에서 플로렌스 퓨는 낯선 여성과 접촉한다. 낯선 여성은 플로렌스 퓨에게 스칼렛 요한슨의 죽음을 알리며 그 죽음이 호크아이 때문이라는 단서를 흘린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어벤저스를 잘 알지 못하는 퓨는 아마도 그 이야기를 믿게 되고, 호크아이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준비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이번 영화는 블랙 위도우의 세대교체용 영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스칼렛 요한슨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마블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여전히 슬픈 일이다. 여러 영웅들 중에서 유난히 그녀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지만 조화롭던 음악 속에서 하나의 조화가 빠진 듯한 느낌이 어색한 것은 사실이다. 시간이 더 흐르면 그녀가 없는 사실에 또 익숙해지겠지만, 아직까지는 여전히 그녀가 그립다. 

 

 

줄거리 정리

영화는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어린 시절의 나타샤는 엄마, 아빠 그리고 여동생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 가족은 사실 작전을 위해 구성된 위장 가족이었는데, 어린 시절의 자매는 그런 사실을 까마득하게 몰랐다. 진실로 가족이라 생각했던 것.

 

이 평범한 가족은 어느 날 저녁 갑자기 누군가로부터 쫓기게 되는데, 탈출하는 과정에서 어린 나타샤의 순발력과 재능이 빛을 발한다. 엄마인 멜리나가 총에 맞았지만 네 사람은 다행히 비행기를 타고 탈출해 목적지인 쿠바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들의 아버지인 알렉세이는 누군가에게 두 딸을 넘겨주게 되고, 두 딸은 레드문이라는 곳에서 잔인하고 혹독한 훈련의 과정을 거쳐 인간 병기로 재탄생하게 된다. 

 

일련의 과정들을 겪고 나타샤는 블랙 위도우가 된다. 레드문은 원래 요원으로 키운 아이들의 자아를 지워 오로지 명령만을 듣는 병기로 만들어버리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타샤는 자아를 유지하게 되고 어벤저스에 합류한다. 하지만 레드문으로부터 벗어난 것은 나타샤뿐, 어린 동생인 엘레나는 여전히 레드문에서 사람들을 죽이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한 임무에서 알 수 없는 약을 접한 엘레나 역시 자아를 회복하게 되고, 두 자매는 레드문을 파괴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하지만 레드문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기에 과거 아버지였던 알렉세이를 탈옥시키고, 어머니였던 멜리나를 만나러 간다. 오랜만에 가족이 다시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이지만, 애틋한 분위기 대신 서로 각자의 할 말만 하는 코믹한 상황이 펼쳐진다. 어색함을 애써 엉뚱한 대화로 무마하려는 다른 가족들과 달리 막내딸인 엘레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진짜 가족이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자아낸다. 

 

영화에서는 멜리나가 레드문에 몰래 침입자들을 신고하면서 끌려가는 설정으로 전개가 된다. 하지만 멜리나와 나타샤는 서로 얼굴을 바꾼 채로 연기를 한 것이었고, 이를 틈타 나타샤가 레드문의 보스인 드 레이코프를 죽이려 하지만 페로몬 조작 때문에 실패하게 된다. 수많은 위기를 넘어서 그들은 결국 남아있는 위도우들에게 자아를 찾아주고 레드문의 본거지를 폭파하는 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화려한 액션씬들이 여과 없이 그려진다. 

 

영화 자체만으로는 충분히 해피앤딩이다. 두 자매는 구해야 할 모든 사람들을 구해낸 뒤 어디론가 떠나면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이어지는 쿠키 영상을 통해 어느 순간 언니인 나타샤가 죽었음을 알 게 된다. 

 

 

나의 감상 후기

모든 마블 시리즈가 그러하듯, 역시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던 블랙 위도우. 스칼렛 요한슨의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보는 내내 아쉬웠고, 그녀의 모습들을 하나라도 더 눈에 담아두고자 열중해서 영화를 관람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블랙 위도우의 어린 시절만이 담겨 있을 뿐, 그녀가 블랙 위도우가 되고 난 뒤의 활약이라던가 숨겨졌던 이야기들은 하나도 담겨있지 않았다. 제목은 블랙 위도우지만, 실질적으로 그녀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영화라기보다는 그녀가 죽고 난 뒤에 활약하게 될 엘레나를 위한 프롤로그로써의 역할에만 충실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11년 만에 내놓은 블랙 위도우의 첫 솔로 무비이기에 더욱 기대가 컸지만, 기대했던 부분들의 10퍼센트 정도밖에 보여주지 못하고 끝을 맺었다. 앞으로 더 이상은 없을 거라는 사실이 더욱 슬프다. 

 

하지만 이번 여성 히어로 무비가 보여주는 자체적인 스토리는 충분히 재미있었다. 또한 두 자매의 어린 시절을 보여줌으로써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이다'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부디 명령에 의해 만들어진 일시적인 가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그 짧은 삶의 추억 덕분에 잔인하고 힘든 시절들을 버틸 수 있었다. 진짜가 아니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진짜 가족이었던 셈. 보는 내내 얼마 전에 양부와 양모의 학대 속에서 내장이 터질 때까지 버티다 죽어간 어린 정인이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정인이에게도 그 모질었던 양부와 양모가 세상의 전부였을텐데, 그 어린아이에게 어떻게 그렇게 독할 수 있었을까. 한국 뉴스에 연일 터지는 이와 같은 아동 학대들을 접하면서 영화 속 내용이 새삼 가슴에 와닿았다. 

 

여성 히어로 무비에서 기대했던 것보다 더 화려하고 몰입감 있었던 액션씬과 전투씬들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레드문이 요원들을 키울 때 썼던 잔인한 방법들이 어쩌면 전 세계 어딘가에서도 일어나고 있을 법한 일이라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물론 아직까지의 의학 기술로는 자아를 통제한다거나 명령만을 듣는 인간 병기를 만들어내는 기술은 없을지 모르겠지만 더 효율적으로 요원들을 사용하기 위해 자궁을 적출한다거나 하는 일들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 

 

우리가 사랑했던 어벤저스의 블랙 위도우는 이제 끝났지만, 앞으로 플로렌스 퓨가 그려나갈 새로운 블랙 위도우의 전설을 다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