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재난 영화의 새로운 서막
대부분의 재난 영화들은 비슷한 흐름을 가지게 된다. 평온한 일상생활을 하던 주인공들은 조금씩 전조 증상들을 알아차리게 되고 긴장과 눈물이 뒤섞인 과정들을 거쳐 결국엔 살아남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가 된다. 하지만 엑시트는 기존의 재난 영화들과는 무엇인가 다르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긴장감으로 가득한 것이 아니라 코미디와 일상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말 그대로 웃음과 눈물을 함께 만들어낸다.
아이돌 가수가 여자 주인공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사람들의 걱정과는 달리, 놀라울만한 연기력을 보여주는 임윤아와 명불허전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조정석, 그리고 오랜 내공으로 다져진 고두심과 박인환, 김지영 연기자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영화 상영 시간 내내 매우 실감 나게 느껴졌다.
한국은 안전불감증이 심한 나라이다. 때문에 현실에서 사고가 터졌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엑시트에서는 방독면, 산악 등반 장비는 물론 드론까지도 시기적절하게 사용하면서 현실과의 거리감을 좁혔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만약 현실에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이라는 상상을 하게 되는데 그런 적절한 장면들이 어우러지며 재난 상황에서의 대처 방안을 생각하게 해주는 고마운 영화였다. 나 역시도 방독면을 쓰는 방법조차도 몰랐던 사람이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방독면 쓰는 방법이라던가 소화기를 사용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한 번 더 공부해보게 되었다.
영화의 흐름
남자 주인공 용남은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남성이다. 취업을 하지 못하고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살아가던 중에 어머니의 칠순 잔치에서 예전에 좋아했던 여자와 다시 만나게 된다. 멋진 직장을 가진 남자로 당당하게 마주했으면 좋았을 테지만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들키기 싫어 거짓말을 할 정도로 현실 속의 우리 모습과 흡사하다. 잔치가 끝날 무렵에 근처에서 독가스가 터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독가스는 순식간에 도시를 삼켜버린다. 독가스는 공기보다 무거워 아래쪽부터 깔리기 시작하는데, 이로 인해 주인공들은 건물 밖으로 나오려다 실패하고 점점 더 건물의 높은 층으로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옥상의 문이 굳게 잠겨있고,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용남은 대학교 산악부에서 배웠던 암벽 등반 기술을 이용해 건물 외벽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 가족들을 구해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독가스는 계속해서 높은 곳을 향해 올라오고, 시민들을 구조하기 위한 헬기가 끊임없이 하늘을 날아다니지만 구조대의 수는 부족하고 구해야 할 사람들은 너무 많았다. 결국 가족들을 먼저 헬기에 태워 보낸 용남과 의주는 살아남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더 높은 건물을 향해 달리고, 그 과정의 중간마다 방독면을 사용하거나 쓰레기봉투를 이용해서 독가스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등 위기 상황에서의 대처 방안들이 현실성 있게 그려져 있다. 특히나 구조대를 향한 SOS 모스 부호를 외치는 장면을 재미있게 그려냄으로써 영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따라 하게 만들어버렸다.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아들이 생사를 넘나들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는 부모님의 가슴 아픈 마음과, 시련과 고난의 중심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주인공들은 끝까지 달려 나간다.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 했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도와주고 상황도 적절하게 그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게 된다.
스릴과 웃음, 눈물이 공존하는 영화
영화를 보기 전에는 재난 영화 특유의 '긴장감'만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온갖 양념들이 잘 버무려진 정찬' 같은 느낌이었다. 초반에 취업하지 못해 애잔함을 불러일으키는 주인공에 대한 연민과, 한국의 실상을 그대로 그려낸 코믹한 장면들, 그리고 목숨을 걸고 가족들을 구하는 장면에서의 감동과 눈물은 물론 한국인에게는 낯선 '암벽등반'을 이용하여 스릴 넘치는 장면들도 한가득 담겨있었다.
이 장면들의 조화는 유치하거나 어색할 수도 있는 위험요소였지만, 감독은 절묘한 비율과 타이밍으로 모든 것들을 조화롭게 담아냈다.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웃었다가 울었다가, 때로는 응원을 하기도 하면서 다양한 감정들을 표출할 수 있었다. 나 역시도 극장에서 두 번을 보고 와서, 넷플릭스에도 공개되었길래 넷플릭스에서도 또 한 번 봤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감상평
보고 나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부분은 아마도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진다면?'이었던 거 같다. 시대는 점점 팬데믹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 환경 문제로 인한 재해들이 발생하고 있고, COVID-19처럼 온 지구를 뒤흔들 바이러스들도 나타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단순히 즐거운 마음으로 보지 못하고 현실에서도 한 번쯤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더 몰입하면서 볼 수 있었다.
특히나 가수 윤아가 아닌 연기자 임윤아로의 변신이 성공적이었음이 반가웠다. 사실 나는 가수들이 연기를 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많은 아이돌 가수들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변신을 꾀했지만 그럴 때마다 어색한 연기에 실망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엑시트에서 윤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있었고 처음부터 연기를 했던 사람 같았다. 물론 조정석의 연기야 말할 것도 없이 환상적이었다.
엑시트는 단순히 재미있는 영화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한국형 재난 영화들이 더 다양해질 수 있는 시발점이 된 것 같아서 리뷰를 쓰는 지금도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다. 앞으로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영화들이 만들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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